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왕 자영 (문단 편집) == 출신 == 자영은 기록상 그 출생이 확실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당시 기준으로 영자영이 진나라 왕위에 올라도 손색없는 영성 조씨 혈통이었던 건 분명한데, 정확하게 기록이 남지 않아 구체적인 가족관계를 알 수 없다. 《[[사기(역사책)|사기]]》 <[[시황제|진시황]] 본기>에 따르면 [[이세황제|호해]](胡亥)의 [[형]]의 아들(즉 진시황의 손자)로 적혀 있으며, <[[이사(전국시대)|이사]] 열전>에서는 진시황의 동생, 《사기》 <육국연표>에서는 자영이 호해의 '형'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동진]](東晉) 시대의 학자 [[서광(유송)|서광]](徐廣)은 진시황의 조카[* 정확히는 진시황의 이복 동생 [[영성교]](嬴成蟜)의 아들. 성교 역시 시황제의 이복동생이라는 기록과 달리 정통성 문제나 기록의 오기 등으로 시황제보다 나이가 더 많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영같은 장성한 아들을 두는게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라는 설을 주장했다. 흔히 소설 《[[초한지]]》의 영향으로 진시황의 아들인 [[부소]]의 아들로 알려져 있지만, 자영이 부소의 아들이라는 명백한 기록이 없다.[[https://shanghaicrab.tistory.com/16153156|#]] 《사기》의 내용을 따르면 자영에게 함께 [[조고]](趙高)를 죽일 모의를 꾸밀 수 있는 장성한 아들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진시황의 손자는 아닐 확률이 높다. 진시황은 50세에 죽었고, 자영이 조고를 죽인 것은 그로부터 3년 후이기에, 아무리 일찍 자식을 낳았다고 해도 손자에게 장성한 아들, 다시 말해 진시황에겐 증손자가 있었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호해의 형이라기에는 호해가 즉위하자마자 모든 형들을 죽였다는 기록과 실제 유골들이 있어 배다른 형이라는 설도 그다지 신빙성은 없다. 이처럼 자영의 가족관계는 매우 모호하지만, 확실한 점은 대체로 견제 안당할 정도의 진나라의 방계 황족이었을 것이라는 건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